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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무한 2017-03-28T12:25:30+00:00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가 힘든 상황과 그 상황을 이겨내는 지혜

작성자
강필
작성일
2019-12-18 23:19
조회
1329
나보고 누가 '당신은 **주의자인가?'라고 물으면,  나는 일단 '맑스주의자'라고 '대답'은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질문과 대답은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질문과 대답은 '맑스주의자'라는 용어에 대한 공동체의 어느 정도 합의된 '인식'을 바탕으로 할 때만,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에서는 ( 뭐 사실은 우리나라를 벗어난다고 해서, 우리나라와 엄청나게 다른 것은 아니긴 하겠지만 ) '맑스주의자'라는 용어에 대한 '인식'은 그야말로 '각양각색'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두 사람 모두 스스로를 '맑스주의자'라고 하는데, 이야기해보면,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경우도 흔하게 봅니다.

그렇다고, 이런 것에 무슨 '공인 인증서' 같은 것을 발행할 수도 없습니다.   적어도 '학문적인 수준'에서, 가령 무슨 대학에서 그것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일정한 수의 '전문집단'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맑스주의자'가 어느정도 기준 역할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가령 과거 운동권(?)에서의 지위와 역할에 따라서 ' 그 사람이 말하는 맑스주의'가 '참' 맑스주의다.  이렇게 하는 것도 우스운 이야기이고.   소위 말하는 '마르크스의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가 기준이 될 수도 없고.   그래서 나는 누가 당신은 ** 주의자인가?  이렇게 물으면, 결국에는 , 그런 질문 자체가 의미가 없는것 아닌가?  라고 반문하는 것으로 이런 이야기를 끝내는 편입니다.    그래서 '무슨 무슨 주의'라고 '이름짓는' - 그것도 정확하게, 객관적인 타당성을 갖는 명명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내용' 자체라고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가령,  나는 '마르크스'는 '사적 소유'를 소중하게 생각한 사람이다.  이렇게 '인식'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경우 반응이 '정말?'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같은 마르크스의 저작을 읽었다는 사람들도.   ( 그런데 이런 경우는 단지 마르크스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당연히 아닙니다.  모든 '책'은 이런 면을 갖게 됩니다. )   그가 남긴 여러 저작의 문구(자구)를 문맥과 관계 없이 받아들이면 '사적 소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데 나는 모든 문구(자구)는 그 때의 '상황'과 그 글의 '문맥속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내가 보기에는 마르크스는 '명백하게' 사적소유의 소중함을 '전제'로 합니다.

이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는 공간은 아니라고 본다면,  이에 대해서 다소 '모호하고, 비약이 있는'  설명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 합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을 '착취'한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 물론 이 견해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도 있고,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그런데, '착취'란 쉽게 말하면 (정말 쉽게 말하는 정도에서 이해하면)  '남의 것을 빼앗는 것'입니다.   즉  이와 같은 생각의 전제는 '사적 소유'를 전제하는 것입니다.   ( 물론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니까, 이에 대한 더 이상의 이야기는 생략합니다.  )   그리고 또 한 편에서 마르크스에게는 '사적 소유'와 '공적 소유'는 수학적 표현으로는 '배반사건'이 아닙니다.  ( 좀 어렵게는 형이상학적 개념이 아닙니다. )  좀 현학적으로 표현하면  '모든' 사적 소유는 '공적 소유'이며, '공적 소유'의 '처분'은 사적으로 점유된다.   뭐 이런 식의 '표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책에서 읽은 표현이 아니라 - 뭐 기억이 정확하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을 듯 하고 -  이 개념에 대한, 내가 생각하는 마르크스의 '생각'을 표현해본 문구입니다. )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그만큼,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심지어 그것은 나는 무슨 '학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근거'가 될 수 없으며,  나는 무슨 '책'을 읽었다고 해도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당연히 '어디서 보았다'고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자료의 '존재'는 내가 확인하고 싶은 '사실'의 근거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쩌라고?   그냥 믿고 싶은 것만 믿고,  그렇게 살라고?   뭐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식인'을 꿈꾼다면, 또는 '지식인'을 자처한다면 그런 수준으로는 곤란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가 증명해주는' 팩트입니다.   그럼?  네.  그래서 '합리적인, 그리고 생산적인 토론'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떠한 원칙과 방법이 '합리적인, 그리고 생산적인 토론'인가?  이에 대해서 간단하게 답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내가 짐작하기에 - 이것은 단지 짐작에 불과합니다. -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이 가능하다.  라는 명제는 '거짓'임을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거의 확신합니다.   하지만, 토론이 갖추어야 할 핵심적인 요소로 합리적이고 생산적이어야 한다 - 물론 실제 사회에서, 특히 우리 미디어가 좋아하는,  그런 '토론'이라고 하면서 사실은 '편 싸움'에 불과한, '논쟁' ( 토론과 논쟁은 이런 면에서 조금 다른 면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과는 구별되는 - 고 생각하고 '실제 그런 토론을 해가는 과정'에서 어느정도 '단서'를 찾아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이제 수놀음은, 무엇인가,  장기적인 목표를 위한 첫 걸음을 - 개인 홈페이지의 수준에서 벗어나서 - 시작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그것을 위해서 수놀음 커뮤니티에서 가장 먼저 '공리'처럼 합의되어야 할 공동체의 '같은 인식'은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토론 문화를 만들어보자' 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6

  • 2019-12-19 00:52
    예전부터 궁금하던 주제였는데 질문 몇개만 하겠습니다
    1.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가능한가요?
    수능문제에서도 있는 그대로 봐라..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셨는데 그때도 지금도 그게 가능한가? 의문입니다.
    예전에는 선생님이 왜 이렇게 말하는지 이해가 안갔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유물론자'이기 때문에 저렇게 말한다는 거라고 추측중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개개인마다 가지고있는 가치관과 세계관이 다른데, 사람은 이 가치관을 물체에 투영해서 보게 된다. 따라서 물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물체를 최대한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한다(극한같은 개념.. 있는 그대로 볼수는 없으나 가까이는 갈수 있는..)
    그것은 타인의 의견을 듣고 비판을 수용하는 것이다'
    쓰고보니 결국은 '내용물'은 선생님과 같은 생각인거 같기도한데, 어쨋든 저는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기 때문에. 질문드립니다.

    2. 저번 글에서 마르크스가 사적소유의 소중함을 생각한다길래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이 글을 읽어보니 어떤 의도인지 알거같네요. 마르크스는 자본론 초반부에서 A라는 물질로 B를 만들었는데 A와 B의 물질적인 측면에선 동일하나 가치가 다른데 이 이유를 노동에서 찾고, 그러면 노동을 한 사람이 가치를 생산했으니 잉여자본을 노동자가 가져야하는거 아닌가 생각했고, 결국 잉여자본을 노동자가 '사적소유'해야한다. 그러나 생산수단을 '사적소유'한 자본가가 이를 가져가므로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막아야한다.. 이런 류의 얘기인거 같은데
    확실히 글로 토론하는건 이런 합의가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답답한 면이 있는거같습니다. 질문은 제가 제대로 이해한게 맞나 궁금합니다.

    • 2019-12-19 10:30
      (1)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같은 이치' ( 위 표현에서는 극한같은 개념 )로 나는 '가능하다'고 답하겠다. 거기 '도착하는가', 거기로 '한없이 다가갈 뿐인가'하는 구별은 '수학적 개념'에서조차 사실상 중요하지는 않지. ( 수렴한다면 '실수'로 정의하는것이니까 ) 그 방법은 '타인의 의견을 듣고 비판을 수용'하는 것을 포함한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겠고, 그런 주제 자체가 '인식론'의 중요한 대상이라고 보아야 하겠지.

      (2) 내 글에서 '마르크스의 이야기를 든 것은' 약간 '어그로성 주제'로 정작 말하고 싶은 것은 '그만큼 무엇인가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본다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설명하고 싶었던 것임. '사적 소유'에 대한 마르크스의 생각은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글에서도 이야기한것처럼, '마르크스의 생각이 과연 무엇인가?'라고 하는 것도 사실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보는 편이고, 결국에 '우리'가 사적 소유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지금 시대'에 갖고 있는가가 중요하겠지. ( 자본론에 대한 부분은 이야기가 길어질테고, 용어도 글을 쓰다보면 잘못될 수도 있는 것이라서, 여기서 '지적질' - 내가 '지적질'할 자격이 있는 수준도 아니고 -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적 소유'를 비롯한 '사적 영역의 가치'가 우선 가장 소중하다. 물론 그런 의미에서 '개인의 욕망' ( 부의 축적에 대한 욕망을 포함하여 )은 인정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고. 다만,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거기에 더하여 있는 것이고, 나의 그런 생각에 영향을 준 것은 '마르크스'라고 하는 정도로 일단 '정리'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그런 이야기는 '오프라인'에서 할만한 이야기이긴 하지. 다른게 아니라, '합의가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으니까'

      (3) 온라인에서 가능한 수준의 '합리적인, 생산적인' 토론의 형식은 과거 이른바 '서신토론'과 같은 사례가 한 예일 것으로 본다. 난 사실, 과거의 사람들의 '서신토론'이야기를 볼 때, 정말 부럽기도 하고, 나아가서 '참 멋있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덧글'로는 좀 한계가 있을 듯 하고 ( 아무래도 '덧글'은 약간 실시간 형태로 반응하게 되는 것이라. 서신토론 - 게시판에 쓰게 될 비교적 정리된 글 이라고 할까 - 형식을 위한 '문제제기성 의견교환' 정도 가능하다고 할까 ). 뭐 이런 부분은 앞으로 만들어가면 되긴 하겠지.

  • 2019-12-19 10:50
    세상 참 좋아지긴 했음 ( 과거에 비해서, 이런 의미임. 여전히 '헬조선'이라고 불리워도 할말이 없긴 하겠지만, 그래서 일반적으로 '어른'은 보수화되는 모양. 자신의 '청춘'시절일 때 비하면 '세상이 참 좋아지긴 했다. 이렇게 되니 ) '공산당 선언' 전문을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볼 수 있네.

    " 공산주의의 뚜렷한 특징은 전반적인 소유의 폐지가 아니라부르주아적 소유를 폐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부르주아적 사유재산은 계급대립과 소수에 의한 다수의착취에 기분을 둔 생산물의 생산과 점유 체제의 최종적이고도 가장 완벽한 표현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산주의자들의이론은 ‘사유재산의 폐지”라는 한마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는현재가 과거를 지배한다. 부르주아사회에서 자본은 독립적이며 개성을 갖지만, 살아있는 사람은 종속적이며 개성을 갖지 못한다. 부르주아는 이러한 상태의 폐지를 개성과 자유의 폐지라고 부른다.

    당신들은 우리가 사유재산을 폐지하려 한다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현재 당신들의 사회에서 9/10에 해당하는 구성원들의 사유재산은이미 사라져버렸다. 소수에게만 사유재산이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그 9/10의수중에 사유재산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당신들의 재산의 형태를 없애려 한다고 우리를비난하는 것이다."

    근데 번역이 매끄럽지는 못한 듯. 아무튼 이 글을 보면 마르크스의 '사유재산'과 '사적소유'에 대한 생각의 한 '일면'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봄.

  • 2019-12-31 07:01
    1.가족관계가 자본에 근거하는가?

     

    혈통과 유대감, 혈통 등을 근거로 한 법률에 근거하지 않는가? 또한 가족의 폐지가 현실성이 있는가?

     

    2.공산사회는 존재할 수 있는가?

    소련과 동구권, 가까이는 북한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 실험은 몰락하거나 사악하게 변질되었다. 가장 나은 경우가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한 경우인데, 그러하다면 자본주의 사회와의 차이점은 정치적으로 독재를 하고 사회적으로 검열을 한다는 것 밖에 남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은 마르크스는 생산력이 극대화되었을 때 공산주의로 넘어간다고 말할 수 있다-그렇다면 마르크스는 자기 시대의 독일 정도의 생산력 정도를 필요 조건으로 본 것인데 현대의 베트남이나 중국, 아니 당장 예전의 소련만 해도 더 거대한 생산력을 갖추지 않았는가?-이미 가난한  국가들조차-아프리카와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자신의 생산력으로 전 국민을 먹이고도 남는다. 의식주로 대표되는 생존 욕구를 충족할 생산력이 부족하다면 충분한 생산력은 영원히 갖출 수 없을 것이다. 쾌락의 욕구는 절대로 끝이 없으므로(인간이 적응하는 특성을 가지므로).

    그렇다면 공산주의를 하나의 이상으로, 유토피아같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가까워져야 할 지향같은 것으로 본다고 하자. 그렇다면 기독교가 말하는 천국과 무엇이 다른가? 인민의 아편이 아닌가?

    기독교는 왜곡되고 악용될지언정 천국행의 수단으로 선행과 겸손,사랑 등 보편적 미덕 등을 말하고 있는데 공산주의는  폭력적 혁명과 투쟁을 주장한다. 종교가 아편이라면 공산주의는 필로폰이나 헤로인 쯤 되는 것이 아닐까?

    3.모든 사람에 동등한 노동을 강제하자는 주장에 관하여

     

    첫 째로 신체 조건과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같은 양의 생산품을 생산하도록  강제한다면 그 노동의 강도가 동등하다 할 수 있는가

    그렇다고 능력에 따라 노동한다면 동등한 노동이라는 명제가 성립되지 않는 것  아닌가

    자본에 의한 분업이 중앙권력의 명령에 의한 노동보다 큰 억압이라 할 수 있겠으며 프롤레타리아가 창출한 권력이 브루주아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

    4.자본가 계급은 노동하지 않는가?

    상속에 대하여는 필요악이라는 단어 외에는 변명의 의지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위험을 감수한 도전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의적 발명을 일반적이고 평범한 반복 노동과 동일 선상에 두려 하는가

     

    5.역사적 실험과 그 결과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볼 때, 공산주의가 인민을 위한 사상이라면 왜 인민의 지지를(장기적인,그리고 객관적 정보가 어느 정도 주어진 상태에서의)  받지 못하는가?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왜 공산주의가 선택 받지 못하며 오히려 혐오와 공포,조소의 대상이 되는가

    역사적으로-맑스가 전제한 정도의 생산력을 보유한 국가를 포함하여-공산주의를 제창한 국가의 절대다수는 독재로 흘러  갔는데, 이는 생산 수단의 공동소유화, 소위 국유화가 그것을 관리하는 특정 소수의 권력을 다수의 브루주아 계급보다 강력하고 반동적이게 만들기  때문이다.

    인류의 실험 결과를 고려할 때,경쟁력 약화와 독재로 귀결되는 사상을 지지할 수 있는가

    6.생산 수단에 대하여

    생산품과 생산수단을 나누는 합리적인 기준이 존재하는가?

    신체도 정신도 생산수단이 될 수 있으며 기계장치나 자본이라 하여도 금고나 전시장에 두고 감상하거나 정신적 만족만 누린다면 생산수단이 아니다.

    생산품은 생산수단이 될 수 있고 생산 수단은 생산물처럼 소비될 수 있는데, 현대의 인터넷 플랫폼이나 문화 컨텐츠등을 생각하면 이런 경향은 더욱 크다 할 수 있다.

    생산 수단과 생산물을 구별할 수 없는데,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만'을  철폐할 수 있는가?-노동의지 감소를 차치하더라도-

    7.동기의 당위는 여전한가

     

    공산주의는 우선 공업화가 부족한 지역에서의 실패는 필연임이 증명되었다. 즉 사회 전체의 생산력을 끌어올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의의가 있다면 그 결과물의 분배에  관한 것일 것이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의 생존이 위협 받으므로 폭력적 혁명이 필요하다고 하였는데 현대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최소한 한국에서- 노숙자가 될지언정- 노동을 아얘 하지 않아도 생존은 위협 받지 않는다.

    다만 상대적 가난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문제가 된다. 상대적 박탈감이란 감정의 문제이므로 생각하기에 달린-일체유심조라고 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렇다면 이제 마르크스가 주장한 폭력적 혁명은 그 목적을 상실한  것이 아닌가?

    • 2019-12-31 10:42
      (1) 일단 이곳은 '맑시즘'에 대한 논의를 위한 곳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회가 있다면 다른 경로에서 이와 관련된 의견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2) 질문한 각각의 내용에 대해서 의견을 드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고 할만한 의견교환 또는 토론 또는 논쟁이 이어질 것 같기는 하네요. 하지만, 주신 글로만 볼때는 우선은 맑시즘 ( 또는 공산주의라고 해도 될 듯 한데 )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조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수준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마르크스는 사실은 이렇게 주장했다'는 이야기부터 먼저 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3) 아무튼 이야기를 간단히 할 수 있는 성질의 내용은 아니라고 보여지고, 언제 이런 부분을 밀도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래봅니다.

      • 2019-12-31 18:42
        네 저는 공산당선언을 일독하고 그 있는 그대로의 문장들에 대해서 말한 것이었는데 문맥이나 맥락 및 배경지식 등이 부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