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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무한 2017-03-28T12:25:30+00:00

어떤 '사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들

작성자
강필
작성일
2019-10-21 10:43
조회
307


지금은 산은 '자연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색의 향연'입니다.   등산하는 사람도 엄청 많은데,  어제(일요일) 설악산에서 '산에서 등산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정체'를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산에서의 정체'라는 '사실'에서도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 배울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모습'의 정체가 - 즉 사람들이 등산로에 끊잆없이 늘어서 있는 상황 - 이 '시내' 또는 '고속도로에서의 막힌 차'였으면 어떻게 될까요?   내 경험에 의하면 '엔트로피 증가' ( 밀도 높은 상태로 밀집되었던 사람 또는 차량이 흐트러지는 정도를 표현한다고 하면 )의 속도가 '산'이 훨씬 빠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산'에서는 가장 늦게 ( 밀린 사람들을 먼저 출발시키고, 한참 뒤에서 따라가는 식으로 ) 출발해서, 어느정도 엔트로피가 증가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시점부터 이제 '앞선 사람들을 모두 추월'하여 결국 꽤 앞에서 출발한 경우보다 먼저 목표지점에 도착할 수 있다는 '산행의 요령'을 가능하게 해 줍니다.  ( 실제 어제 산행에서 이런 방법으로 산 정상에서 일출블 볼 수 있었습니다. )

 

그러면, 이때 '산'에서는 '고속도로'에서보다 '엔트로피'가 빠르게 증가한다.  이런 '가설'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산'과 '고속도로'를 추상화하여서 예를 들면 '복잡한 경로의 회로'와 '단순한 경로의 회로'에서의 엔트로피 증가 속도의 비교 같은 과제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어린 시절에 내가 '등산'을 좋아하는 과정에서, 산에 한번 갖다 오면, 또는 산행중에 이런 식의 '과제'가 끊임없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이런 과제'가 생겨날 수도 있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으로 그치지만 - 왜냐하면 이런 과제는 여러분들이 해결해보라고 -  어린 시절에는 직접 해결해야 했고, 내 기억에 95% 이상은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한번 해결해보겠다고 발버둥치다가 '연구 과제 목록'으로 남겨둔 정도였을 것입니다.  ( 내 기억에 이런 연구과제 목록이 '독서카드'로 꽤 두껍게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대학진학 이후에도 갖고 있었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봐' ( 학문적 과제에 미련이 있는 모습을 들키기 싫었을 듯 합니다.  스스로에게도 미련을 갖지 말자는 결심이 필요했을 수도 있고 ) 버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하지만, 그 95%의 실패와 좌절은 '시험을 무진장 잘보는'  자칭타칭 천재로 만들어주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총동원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때야 스스로도 '천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 그러고도 시험을 잘 보지 못했다면' 난 바보였을 것입니다.    아무튼 주변 지인들과 이런 종류의 '판단'에 대한 이야기는 '결론'이 안나는 성격이긴 합니다.  아무리 내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보아야, '그것은 너니까 가능하다.  그것이 천재다.'  뭐 이런 식이라서.   어린 시절에 나를 보았던 그 경험과 느낌을 주변 사람들은 쉽게 떨치진 못하긴 할 것도 같고.

 

중요한 것은 '사실'을 대하는 태도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는 어쩧게 하다보니까 '사실'조차도 불분명한 - 그런데 이런 소위 '팩트' 자체를 알기 어렵다는 우리사회만의, 그리고 지금사회만의 문제는 아니긴 합니다.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인류의 '과제'라고 할 수 있을 인간이 만들어온 모든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점'이기도 합니다 - 것도 있지만.

 

글의 앞부분에 인용한 것은 '최근에 부쩍 등산인구'가 늘어나서 '언론'에 보도된  - 아마 공기관에서 배포한 자료에서 인용했다고 되어 있는데, 그 확인까지는 안해보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실 - 공기관 배포 자료를 인용했다는 사실 -은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용을 밝힘으로써 이를 보도한 언론은 '전문성',  내용의 사실유무에 대한 '책임'은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나는 이 내용의 사실이나 가치 등등 검증과정은 하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사의 '언론의 역할'은 인용한 공기관의 '나팔수' 역할일 뿐입니다.

 

정말 오래된 기억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산을 좋아하는 고등학생을 이쁘게 봐준 대학 산악부 회원들은 그 어린 고등학생에게 바로 저렇게 가르쳤습니다.  등산에서 가장 좋은 속력 - 가장 빠른도 아니었습니다. - 는 (평균)속력 시속 3km 이다.   저 인용내용처럼 '경제속력'였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런 의미의 속력 - 가장 빠른은 아니었음은 분명함 - 였음은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래서 정말로 그 기준에 맞게 걸으려고 노렸했고 -  결코 쉽지 않은 속력이라 내내 의심하면서 걷긴 했지만 -  훗날 우연히 그 분들을 만났을때,  그 사실을 분명하게 물어보았기 때문입니다.   등산의 최적속력이 시속 3km가 정말이냐?  형들은 그렇게 걷느냐?   그 분들은 '전문 산악인'들이고,  평균속력 3km가 가능한 워킹산행을 많이 하는 것은 아니어서 - 고산에서의 환경은 완전히 다릅니다.  100m 나아가는데 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 그런 경험 자체가 사실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사실 그 분들은 '뭐 그냥 책에 쓰여있으니까 우리도 그 속력으로 걷지 않지만 가르친 것이다."

 

산에서 나는 평균속력 3km를 걸을 수 있는 - 정확하게는 평지에서 걷는 속력보다 줄어드는 정도가 작은 -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아마도워킹산행이라면 1등급 수준을 넘어서 뭐 당시 내가 진학했던 대학, 학과를 뽑는 정도는 합격할 수 있는 수준이 됩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40년 가깝게 지나고 있는 현재의 '언론기사'에서 또 '책대로' 인용된 글을 '경제속력'이라는 표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사실에서 또 궁금해지는 것은 있습니다.  도대체 그 3km는 어디서 시작된 일종의 '가짜 사실'인가?  아니, '과학적 근거'는 무엇일까?   그리고 왜 '지금'까지도 저 이야기가 '유지'되고 있을까?  분명한 것은 있긴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전문 산악인은 저 이야기를 고민할 필요가 없고 ( 왜냐하면 환경이 다르니까 ) 나와 같은 아마츄어 동호인들은 '책'이나 이런 '정보'에 사실 아무런 관심이 없고,  등산 동호인들 사이에서는 과거와 같은 '선배'에서 '후배'로 내려오는 어떤 구전 배움같은 것도 거의 없을 것이라는.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지금'도 저 잘못된 사실을 '언론'에서 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니까.

 

내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면 주변 사람들은 ' 참 피곤하게 산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런 것이 내가 사는 재미입니다.  지금은 이 이후는 '중단'합니다.  과제 목록같은 것도 만들지 않습니다.   뭐 시간되면 한번 '탐구'해보자.  이러고 끝냅니다.   하지만 '적어도' 학창시절에는 이런 것으로부터 나 자신은 많이 성장했을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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