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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무한 2017-03-28T12:25:30+00:00

수학의 아름다움과 재미에 대한 기억, 그리고 발견적 과정

작성자
강필
작성일
2021-01-03 08:46
조회
162
 

수학의 '아름다움'이랄까, '매력'이랄까.   이런 것을 어렴풋하게 느낀 것은 '고등학교' 에 들어간 이후였던 것 같습니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초등학교(당시 용어로는 국민학교)때는 우선 '수학'이라고 하지 않고 '산수'라고 했으며, 중학교때 부터 '수학'을 배우긴 했지만, '수학'에 대한 일반 교양서적 같은 것은 거의 읽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이런 류의 기억이 정확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중학생'인 나에게 '수학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냐?'고 물었다면,  수학이 '재미있다'고는 했을지는 몰라도, '아름답다'고 대답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 정확하게는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때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면서... - 충격적인 문제를 만납니다.

 

을 '증명'하라...

 

그 때까지, 내가 수학을 공부해온 방식은 지금 용어로 표현하면 주로 '발견적 과정'을 통해서 가설을 만들고, 그 가설을 검증하는 것을 스스로 연역적으로 하게 되거나,  스스로는 발견적으로 정도 할 수 있었고 결국 '교과서'를 통해서 '배워서' 검증을 하게 되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중학교 교과과정에서 배우는 거의 모든 내용은 이런 정도는 가능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배우기 이전에 스스로는 짐작할 수 없었던 것은 가령 예를 들면, '무리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해보기 이전에 주변에서 말을 해주어서 알고 있었던 것 같고 무리수에 대한 이런 저런 성질 등은 스스로 발견적으로 가설을 만들어볼 수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때 배우게 되는 로그 같은 것은 배우게 되는 거의 전체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웠던 것 같고.

 

그런데, 단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자명한 성질을 '증명'하라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감도 잡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도 빠르게 '답'을 보았을 것입니다.   ( 뭐 어떻게 하면 될 것 같다는 짐작이라고 있어야 뭘 해 볼 수 있는데..이것은 문제 자체가 짐작할 수도 없는 그런 문제이기도 하고.   '고등학교 수학'은 이런 것인가 보다... 그렇게 받아들여도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  그리고 '참 멋있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아름답다'라기 보다는.

 

이 강력한 인상은 역설적으로 고등학교 수학을 더욱 '발견적 과정'을 중심으로 공부하게 해주었습니다.  명확하게 정리된 생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수학'과 '과학'의 차이점을 비교적 명확하게 이해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중학교까지는 '수학'과 '물리'는 ( 당시 중학교때 배우는 과학 과목의 구분오는 물상이라고 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 이 중학교때 구분은 고등학교때 내가 물리/화학/지구과학은 비교적 잘 했지만, 생물은 산과 자연을 그렇게 좋아해도 멀리하게 만드는 - 생물선생님이 '학생과장' 선생님이었다는 배경도 있긴 했지만 - 이유가 되긴 합니다. ) 잘 구별되지 않았습니다.   즉 내가 '수학'공부를 했던 방식의 '문제점'을 거의 느끼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내가 고등학교 1학년 1학기까지는 '본고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고사'의 서술형 답안 작성의 기준에 맞게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집합에서 '드모르간의 법칙'을 '벤 다이어그램'으로 그려서 증명하면 '당연히' 감점인 그런 서술형 답안 기준을 갖고 있을 때입니다.   그러니 내가 중학교때 공부한 방식으로 해서는 고작해야 '답'을 맞히는 것은 가능하지만,  '좋은 점수'를 받을 수는 없는 그런 시험'제도'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연역적 과정은 '스스로 완성'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나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그래도 '자기첨삭'하는 방법을 기본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 이것은 내가 중학교때부터 '문예'활동을 많이 했던 습관의 도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중학 시절에 저는 '신문'에 내가 쓴 글이 수록될 정도의 나름 글 잘 쓰는 소년이었습니다.   고등학교때도 '작품' 활동을 계속 했고... )  '자기첨삭'이 아니었으면,  결국에는 '쓰여진 풀이'(즉 답)을 보고 고쳐야 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는 '연역적 서술'의 특성상 - 그 모든 것을 스스로 찾아내는 것은 시간상도 불가능했고... -  '자기주도적'이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에게는 참 '운'이 좋게도, 본고사가 없어집니다.   이것은 여러가지로 내 학창시절을 '윤택'(?)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주 이야기하는 편이지만, 나는 50km쯤 달리는 경주에 참여한다고 생각하고 달리기를 시작했고, 내가 10km 정도 왔다고 생각할 정도에 갑자기 10km 경주로 바뀐 것 같은... 그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 본고사 폐지는 나의 학창시절의 모든 면에 영향을 주었는데,  수학공부에서도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 수학 자체는 참 멋있기는 하지만 ' '수학'공부는 '시험'을 위해서 필요한 정도만 하면 된다.

 

게다가 당시에 예정된 학력고사 수학문제는 예상되는 난이도 수준이 '본고사'를 공부한 입장에서는 턱없이 낮은 ( 가령 현재 수능으로 따지면 20,21,29,30에 맞추어서 공부를 했는데,  3점 수준의 문항만 출제하는 제도로 변경되는 것과 같은 )  그런 수준에 모든 문제가 4지 선다형 - 보기가 4개인 - 인 시험이라서 '시험'을 위한 공부는 당시 내가 생각하는 '올바른 방식'의 수학공부 - 본고사 답안을 작성하는 기준에서 배운,  집합의 연산을 벤 다이어그램으로 설명하면 감점을 받는 - 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의 수학공부는 '시험'을 위한 공부는 하루에 일정한 양의 문제를 '모의고사' 형식으로 푸는 정도만 하고 ( 몇 문제였는지는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가령 10문제를 20분.. 이런 정도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목적이 '시험'을 위한 수학공부의 시간은 하루에 30분을 넘기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것도 아침시간에 했기 때문에 '친구'들은 내가 '시험'을 위한 수학공부를 하는 시간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 나머지는 '과학'을 하기 위한 기본소양과 자질을 키우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기본적으로 '실험, 관찰, 조사'를 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 어쩌면 다행스럽게도 ) 당시는 과학적인 실험, 관찰, 조사를 할 여건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 서울에 놀러와서 '국립과학관' ( 창경원 옆의..지금은 무엇인지 모르겠네요)을 보고, 정말 '서울에 살고 싶다'고 할 정도였고...  게다가 그런 '훈련'의 대부분은 '수업시간'에 해야 하니.

 

우선 교양서적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수학/과학 ( 생물 분야는 제외) 교과와 관련된 당시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고양서적은 거의 다 읽었습니다.  ( 뭐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고양서적의 종류가 많은 것은 아니긴 했습니다.  대략 150 ~ 200권 사이였을 것입니다. )  그런데 그렇게만 수업시간 ( 하루 8시간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을 보내는 것은 너무 단조롭기 때문에, '수학문제'를 소재로 - 물론 물리문제나 수학,물리의 개념을 소재로도 - '놀기' 시작했습니다.   구체적인 기억들은 없습니다.   그런데 가령 '가속도의 변화율'을 정의해서 그것을 이용하면 물리현상을 더 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닌가?  뭐 이런 것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노는 것이라 어차피 '성과'를 만들 필요는 없지만 개념적인 수준에서 그런 '놀이'는 너무 막막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실 이런 성격의 놀이는 '연습장'이 크게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말하자면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멍하게 있는 듯'한 경우가 많습니다.

 

수업시간에 할 수 있는 놀이 중에 '전투적'인 - 말하자면 연습장을 이용하여 열성적으로 무엇인가를 하게 만드는 - 것은 '맞힌 문제의 다른 풀이'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때 대부분의 방법은 '발견적으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다른 풀이를 '연역적으로' 찾는 것은 너무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당시 내가 생각했던 수학 -  을 증명하는 멋있고 '아름다운' 수학 -은 내가 장래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 '어려움'을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아무튼 '과학자'가 될 것이니,  '실험,관찰,조사'를 하는 것을 통해서 가설을 만들고 그 가설을 어떤 실험,관찰,조사를 해서 검증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상황에서 과학적인 실험, 관찰, 조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되니 주로 '수학/물리적 개념과 문제'로 그것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 물론 장래희망도 이때쯤은 '이론 물리학자'이긴 했지만 -  '정말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물론 방과후에는 그런 '놀이'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것을 더 즐겨한 것으로 보아서 수업시간에 '연습장'을 갖고 하는 그런 놀이 보다는 친구들하고 노는 것이 저 '재미있었다'는 것은 분명했던 것 같습니다.

 

수놀음은 하나의 가설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과거에 도달했던 수준 - 그 수준이라고 해봐야,  고등학교까지의 과정에서 성과른 내는 정도이긴 합니다 - 은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전제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꾸준히 '도전'해야 할 문제를 만들어낼 호기심같은 것이 있어야 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그것의 해결을 시도하는 것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거나 최소한 문제해결에 대한 의지와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의 전제.   사실 우리 교육의 현실에서 '왜?'  이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소통되기 어려운 조건에 있습니다.  어떤 문제는 '이렇게는 못 풀어요?'라고 했다가 '개념이 부족하다'고 욕먹으면서 크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정도의 시점이 되면 이런 강력한 지적 호기심은 '봉인'상태가 되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 개인적으로는 이런 면은 '교육계 금수저'인 경향으로 - 아버님은 제주도 교육계의 대선배이셨으니까 - 봉인이 덜 던 환경이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  그래서 이제 이것은 '수놀음'에서 컨텐트를 보급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즉 발견적 과정으로 해야 할 '과제'는 제시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하나의 전제는 누가 제시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반대로 이 전제를 충족하지 못한다면,  수놀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수학 자체를 위해서도 그렇고, 수학 '시험'을 위해서는 더욱 그러한 것입니다.    노파심에서 말하면  '수학'에서 이렇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당연히 없습니다.  수학이 아닌 무엇인가 '의지와 끈기'를 가능하게 하는 분야를 찾을 수 있습니다.  ( 다만 그런 분야여도 반드시 어느정도의 '인내'는 필요 합니다.  아무리 자기 '적성'에 맞는 분야라고 해도 '인내'의 과정을 필요하지 않는 성취란 '평균적인 수준'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

 

내가 도달했던 그 지점 '이후'에 대해서는 나는 알지 못하며,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줄 위치에도 있지 않습니다.  뭐 누군가 그 위치에 도달한다면 제가 아는  지인들을 소개(?)해주면 되긴 할 것입니다.  " 이제는 네가 좀 도움을 줘라.." 뭐 이런.  그런 '지인'들 리스트는 나름 뭐 많긴 합니다.  ( 수십년간 연락이 없어도 내가 만나자고 하면 만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꽤' 유명한 사람들도... )

 

2021년에 이 가설 - 내가 한 과정처럼 하면 당연히 내가 도달했던 성취 정도는 누구가 가능하다. - 의 검증을 해볼까 합니다.   그 검증은 '여러분'과 함께 하는 것이지,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참고)   '수놀음'에서 '발견적 과정'으로 공부, 훈련하기 위한 소재를 제공한다고 해도 수놀음은 '커뮤니티'를 지향하는 곳입니다.  일반적인 '사'기업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준비된 컨텐트의 보급은 '커뮤니티의 요청과 논의'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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