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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정무한 2017-03-28T12:25:30+00:00

'선도(先導)'와 '주도(主導)에 대한 단상과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잡념

작성자
강필
작성일
2020-12-30 11:04
조회
164
 

80년대 학생운동에서는 '학생운동의 위상과 역할'을 둘러싼 서로 다른 의견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당시 나는 '우리'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절'을 꼼꼼하게 되짚어본 것은 아니라서 단언은 하긴 어렵지만, '지금' 생각하면 소위 '이론적'으로는 그렇다고 해도, '그러니' 너희들과 '같이 할 수 없다'는 식은 다소 편협한 면이 있었다고는 생각되긴 합니다.   아무튼 한 의견은 학생운동 = 전체운동의 선도체 , 다른 한 의견은 학생운동 = 전체운동의 주도체... 뭐 이런 차이입니다.

 

'선도'와 '주도'를 사전적 의미에 맞게 정확하게 사용한 것인가는 모르겠습니다.  일단 '선도'는 사전적 의미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고, '주도'는 사실 '선도'와 거의 비슷한 의미로 사용될 때도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때는 '주도' - '주요세력' 이런 의미로 사용하는 의견대립이었습니다.   모든 '논쟁사'가 그러하듯, 이 논쟁에서도 '왜곡 비난'도 있긴 했습니다.  " 니들이 학생운동 = 주도체라고 하는 이유는 솔직히 말하면 '잡혀가기 싫어서' ( 주도체면 역량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긴 할테니..뭐 이런 근거로 )가 아니냐?  "

 

여기서 간단히 소개할 내용은 아니긴 하고,  사실 이 '논쟁'의 모든 과정은 그 자체가 거의 '논문급'이 되어야 가능하다고 할 정도이긴 한데 - 그리고 사실, 이 '논쟁'에 관련된 소위 '자료'는 인터넷검색으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긴 합니다. -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사실 '사교육'과 '공교육'이라는 '카테고리'에서도 정말로 '비슷한 역사의 반복'을 느끼기 때문이긴 합니다.

 

마르크스는 프랑스혁명의 한 장면을 다룬 책에서 '역사의 반복'에 대한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  ( 사실 젊은 시절에 이런 마르크스 특유의 문장 - 헤겔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는 - 은 정말 멋있긴 했습니다.  )  그런데 사실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영원히... 왜냐하면 '인간'의 살아가는 방식과 생각하는 방식의 '보편적 특징'은 역사 전체를 관통할 수밖에 없긴 합니다.   그래서 비슷한 성격의 두 역사적 사건은 항상 저 명언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선구자'라는 노래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음악 실기 시험에서 불러야 하는 노래였지만, 무언가 '노래제목과 가사'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 이에 대한 충격적인 논란, 그 진실에 대해서는 여기서는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  그리고 나는 '선구자'로 살아야 하겠다.  ( 뭐 노래의 제목과 제 이름의 연관도 사실 큰 이유중의 하나긴 했고 )  뭐 이런...  그리고 사실 나는 그런 삶은 '외형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한 삶', 때론 비극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는 삶이라는 것도 참 '멋있는 것'이었습니다.  ( 개인적인 인연이 있는, 지금은 정신과 의사인 선배의 이야기로는 이것은 무슨 정신병 증상의 하나라고 하더군요... 뭐 쉬운 말로는 일종의 '왕자병' 증상 같은 것이라고... )

 

사교육/공교육 카테고리랑 무슨 관계가 있다고?

 

교육을 '선도'하는 역할은 '사교육'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공교육의 '시범사업'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특별한 경우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가령 현재 제주교육청에서 추진하는 IB교육과정 - 개인적으로는 좀 별로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 같은 경우가 그런 예일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선도'하는 역할을 '사교육'이 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공교육 시스템'이 되기 위해서는 '다수의 동의' - 민주주의 제도하에서 이것은 정치적 의사결정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 가령 IB교육과정 도입이 교육감 출마에서 '공약'이었던 것처럼 )  그런데 일반적으로 '선도하는 역할'은 처음에는 당연히 '다수의 동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즉 '선도'하는 사람들에 의한 어떤 내용이 점진적, 또는 급진적으로 다수의 동의를 얻어가는 과정의 반복이 사실 기본적인 '역사'의 속성입니다.

 

사실 우리 교육에서 '사교육'이 문제가 되는 것은 , '사교육'이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뛰어넘어 '교육의 주도체'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극단적으로 학교에서 '학원'수업을 듣기 위하여 잠을 자는 것과 같은.   ( 이렇게 되는 이유, 해결방안 등의 제시는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을 뛰어넘어서 생략합니다 ).  사실 사교육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육에서의  '선도적 역할'을 하는 것에 주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긴 하고.  ( 사교육은 '사' = '비즈니스'  + '교육' 이라는 두 속성이 있습니다.  '교육'의 속성보다는 '비즈니스'에 더 강조점이 옮겨가면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  학생운동이 선도체나 주도체냐는 다름의 문제보다는 바른 인식의 문제라고 해도, 사실 사교육이 '교육의 선도체'가 되어야 하는가?  '교육의 주도체'가 되어야 하는가?  는 해당 사교육기관의 '선택'의 문제일 뿐이긴 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선도적 사교육과 그로 인하여 공교육이 바람직하게 변해가는 것이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한다면,  현실은 가장 '부정적인 형태'가 되는 것 같아 안타깝긴 합니다.   '선도적 사교육'이 많지 않는 것은 둘째로 하고,  공교육이 '사교육'과 이른바 '시장 점유율'을 놓고 경쟁하는 양상 - 사실 이렇게 되는 이유에는 '정치, 경제적 명분'이 존재하긴 합니다.  이른바 '사교육비 절감' 같은... - 이 실제 학생에게 주는 영향.   그래서 EBS가 보여주는 모습을 보면....  )

 

아무튼 이런 저런 상념에 불과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수놀음의 이후의 포지션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해서 입니다.

 

" 2021년이 수놀음은 '교육'을 '선도'하는 '사적 노력'을 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번 해보겠습니다.   "

 

젋은 시절 " 나는 전체운동의 선도체로써의 학생운동을 하는 혁명가 "라는 자기규정으로 참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지금도 나 개인에게는 자랑스러운 '과거'이기도 합니다.  ( 뭐 자기도 이전에 '운동권'이라고 주장하는 이상한 -?- 사람들 때문에 어디 다른 곳에서는 이런 이야기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  이제 그래도 한 일년은 그때의 '혈기 넘치는 기분'으로 이번에는 '교육'영역에서 한번 보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합니다.    그것이 비록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반복되는 역사가 될 지라도.

 

2020년은 역사에 반드시 '기록될 해'이긴 할 것입니다.  2021년도 인류역사에 반드시 '기록되는 해'가 되길 바랍니다.

 

" 공동체에 닥친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인류 공동체의 소중함과 지혜를 만들어가는 원년으로. "

 

그리고, 그 역사의 기록 자그마한 어디 구석에,  '2021년에 우리나라에서 교육혁명의 작은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라는 말이 쓰여지면 참 좋겠다는 생각으로  가는 해를 보내고 오는 새해를 맞이하려고 합니다.

 

 
전체 2

  • 2020-12-30 20:04
    전 요즘 정치나 시사를 보며 운동권에 대한 악감정이 매우 많이 쌓였는데, 그래도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하던-소극적으로든 적극적으로든- 분들 중 다수와 그때 그들이 가졌을 의지가 폄하되진 않아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그 때 살아보지 않았고, 심도깊게 알아본 경험이나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아직은 말을 아껴야 하긴 합니다. 자칭 타칭 운동권들의 행보나 지금 시대적 상황이 판단력과 정보가 부족한 내 입장에서 공정히 생각하기 힘들게 하는 것도 사실이구요.

    어쨌든 저는 진심으로 '자유'를 위해 투쟁한 분들은-최소한 그 때의 그들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좋은 새 해가 되기 바랍니다.
    나 자신에게도 사회에도 인류에게도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2021이기를!
    새해복 많이 받으십시오

    • 2020-12-31 10:34
      예를 들어, '촛불 시위'는 그 자체로 평가받을 역사적인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촛불 시위'에 참여한, 또는 '그것을 주도적으로 진행한 사람'들을 '운동권'이라고 가령 부른다면, 그 '운동권'은 지금 이 시점에서도 '여러 정치적 분파'로 분화되어 있을 것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는 지금의 '여러 정치적 분파'가 '촛불 시위'에서는 '공동으로' 같은 목표를 갖고 있었던 것 - 극히 일부의 이른바 '변절' - 뭐 다른 정치적 분파로 옮긴다는 뜻에서 이런 용어를 쓴다면 - 을 제외하면 - 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80년대의 민주화운동도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만큼 '정권'의 전통성, 정당성, 도덕성 등이 부족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극히 일부의 정치적 집단을 제외하면 '모든 정치적 분파'가 그때 '같은 목표'를 갖고 싸웠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간혹 누구 누구는 변절..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전혀 안 그렇습니다. 그때부터 '다른' 정치적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 가령 그 중에 '맑스-레닌주의'를 실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보아야 정확할 것입니다. 실제로 개인적으로는 그때 그렇게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들과 '실제로는' 생각이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나를 '맑스주의자가 아니다'. 즉 '변절했다'고 말합니다. 그럼 그때는 왜 생각이 다른 것을 몰랐는가? 당면한 민주화운동에 집중할 때였기 때문에, 그런 '한가한 이론 토론'을 할 시기도 당연히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이론 토론'도 그에 입각한 '실천'을 할 때 비로소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

      다만, 내가 좀 '열받는 것'은, 그 당시에 약간 '덜 적극파'(?...뭐 이런 표현이 좀 우습긴 합니다)인 사람들이 '운동권'의 브랜드를 갖고, 그 브랜드를 망신주고 있기 때문이긴 합니다. 아무튼

      (1) 80년대 민주화 운동은 그 시대의 운동 자체로 평가되면 됩니다.
      (2) 80년대 민주화 운동은 현재 시점에서 어떤 한 정당, 정치적 분파의 '소유물'은 절대 될 수 없습니다.
      (3)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것 자체는 현재 시점에서의 '패악질'의 '까방권'이 될 수 없습니다.

      내년에는 이런 이야기도 간혹 나눌 수 있었으면 좋긴 한데, 아무튼 일단 '수학'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부터 좀 어떻게 정리되어야 이런 이야기를 '의미'있게 - 단순히 내 과거를 회상하고, 서로 '다른' 혹은 '틀린' 생각을 싸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동의'를 만들어갈 수 있는 -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새해 복 많이 받기를.